[h1] 장점만큼 단점도 명확한 게임 [/h1] 이 게임을 정말 재밌게 즐겼으나, 추천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게임 시스템이 상당히 오래되었고, 최근에 나온 턴제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턴제 게임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아쉬운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단점을 길게 적었지만 저는 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특히 페르소나를 수집하고 하나씩 적의 대응법을 알아가는 과정, 캐릭터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게임이 유쾌하고 밝으나 주제가 그냥 가볍기만 하지는 않습니다)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또한 게임의 UI와 분위기는 저에게 충격적일만큼 신선했고 좋았습니다. 다만 제가 재미있게 했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이 가격을 지불하고 플레이하라고 추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정가 기준으로 발더스 게이트와 가격이 비슷합니다...) 특히 최근의 턴제 RPG들과 비교하면 오래된 설계가 눈에 띄는 부분이 많고, 턴제 전투 자체도 취향을 상당히 탑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게임은 “좋은 게임이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턴제 전투와 긴 JRPG를 좋아하고, 캐릭터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쌓으며 하나의 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면 아래의 단점들을 감수하고도 충분히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히 정가에 구매하기 전에는 자신에게 맞는 게임인지 한 번 확인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1. 반복되는 일상 코옵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선택지가 있지만, 이것을 제외하면 결국 몇 가지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코옵을 진행하려면 인간 파라미터라는 주인공의 일상 능력치를 일정 수준 이상 올려야 하고, 결국 효율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몇몇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게임의 상당 부분을 일상생활이 차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입니다. 2. 선택지는 많지만 선택한다는 느낌은 적습니다 대화 선택지를 포함하면 정말 많은 선택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전체 게임의 진행이나 결말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지는 손에 꼽습니다. 대부분의 선택지는 대화가 조금 달라지거나 호감도가 변하는 정도이고,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선택지는 굉장히 많지만 정작 긴 게임을 끝내고 나면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3. 던전과 전투의 반복 캐릭터 육성과 레벨업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기능들이 상당히 후반에 해금됩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새로운 캐릭터와 페르소나를 육성하는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스토리 진행에 따라 던전인 팰리스의 분위기와 구조가 크게 달라집니다. 덕분에 시각적인 반복감은 상당히 줄어듭니다. 문제는 결국 플레이 방식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방식의 전투를 반복해야 하고, 레벨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반복 전투를 해야 하는 구간도 있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육성 시스템이 열리면서 상당히 재미있어졌지만, 그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4. 너무 오래된 저장 시스템 저장 시스템은 정말 낡았습니다. 던전에서 특정 장소에서만 저장할 수 있는 것은 던전의 긴장감을 위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과 스토리 진행 중에도 원하는 순간에 저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대화를 빠르게 넘긴 뒤 저장하면 되지만, 스토리가 꽤 오랫동안 이어지는 구간도 있습니다. 당장 게임을 종료하고 싶은데 저장하기 위해 강제로 더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더 큰 문제는 자동 저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100시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플레이하게 되는 현대 게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5. 적, 특히 보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일반 전투에서는 오히려 이 시스템을 좋아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적에게 화염, 빙결, 전격 등 여러 속성을 직접 사용해보고 약점과 내성을 알아냅니다. 이후 해당 페르소나를 수집하면 그 정보가 기록됩니다. 하나씩 정보를 쌓으면서 이전에는 상대하기 어려웠던 적을 쉽게 공략하게 되는 과정은 이 게임의 전투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게 느꼈던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문제는 보스전에서도 거의 똑같다는 것입니다. 보스가 어떤 공격에 약한지, 어떤 상태 이상이 통하는지 추론할 수 있는 정보나 충분한 힌트가 거의 없습니다. 결국 직접 공격해보며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격 속성만 해도 물리와 총격을 포함하여 10종류이고, 여기에 여러 상태 이상과 내성까지 있습니다. 결국 처음 보는 보스를 상대할 때 전략을 세우는 과정이 “이번 보스는 이런 특징이 있으니 이렇게 준비해봐야겠다.” 보다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냥 전부 준비해가자.” 가 되어버립니다. 시행착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턴제 게임에서 적을 관찰하고 실패하면서 공략법을 알아가는 과정은 재미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플레이어가 관찰하고 추론할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이 게임의 보스전은 그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공략을 보지 않는다면 여러 가능성을 직접 하나씩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략을 고민하는 것과 정답을 모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6. 동료 캐릭터 육성의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육성에서 높은 자유도를 가지는 것은 사실상 주인공뿐입니다. 주인공은 여러 페르소나를 수집하고 합체하면서 스킬과 특성을 조합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깊이도 있습니다. 반면 동료들은 레벨에 따라 배우는 스킬이 대부분 정해져 있으며, 배울 수 있는 스킬의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료 하나를 두고 “이 캐릭터를 어떤 방향으로 키울까?” 라고 고민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다양한 캐릭터와 빌드를 조합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전략을 만드는 것이 턴제 RPG의 큰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